최근에 조성된 정원을 뒤돌아보며 이대길 정원사와 이범수 안마당 더 랩 소장이 식물이 자연 그대로 뿌리를 내리도록 두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그들의 노력과 정원이라는 언어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정원에서의 사색
가드닝을 통해 전하는 한 편의 시
자연과 인간 사이, 그 어딘가 존재할 법한 풍경처럼 보이는 성수 정원은 대지에 대화를 건네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지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이솝 성수는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공간을 정원에 할애했습니다. 스토어의 중앙에 위치한 친밀한 녹지 공간인 이곳에서 자연주의 정원 디자인이 구현됩니다. 계절에 따라 피는 연약한 꽃보다는 생명력이 강한 여러해살이풀과 나무들이 선호됩니다. 재생 원리 실천을 위해 빗물은 저장 탱크와 연못에 모아두었다가 사용되고, 그런 다음 다시 지하로 배출됩니다.
정원사로써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대길: 정원사로서 자연을 해석하는 일은 제 작업의 핵심이며, 이는 경관을 조성하거나 설치미술 작품을 구상하거나 원예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 실현됩니다. 저에게 자연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고,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그에 대한 여러 해답을 표현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이범수: 외부 공간을 디자인하는 스튜디오 ‘안마당 더 랩’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상생이 최근 들어 주로 다루는 화두입니다. 상생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다원론(多元論)적 이야기이기에, 자연주의적 공간을 조성하는 데 포괄적인 접근 방식을 적용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작업을 통해 공간을, 일상의 질을, 더 넓게는 세상을 더 낫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정원의 주요 콘셉트로 자연주의 정원을 탐구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이대길: 우리는 환경을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듯이,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자연에 공감하는 것은 정원사의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지구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디어를 실험하기 위해 자연의 ‘원칙’에서 힌트를 찾습니다.
이범수: 자연주의 정원에 대한 움직임은 비교적 새로운 개념입니다. 약 100년전에 시작되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속가능한 실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정원을 디자인하셨는데, 정원을 의뢰받았을 때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에 대한 접근법에 차이가 있습니까?
이대길: 그렇지 않습니다. 주거 공간이든 상업 공간이든 의뢰인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생각하며, 동시에 자연에서 느꼈던 요소를 한번에 담아내려 노력합니다. 기존의 공간이 자연과 닮아 있고 많은 생명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었으면 합니다.
이범수: 제 생각에는 주거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족의 생활방식을 반영하면서 정원이 계절마다 아름다운 휴식처가 될 수 있는 편안한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반면에, 상업 공간의 정원은 주거 공간보다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그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정원을 조성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까?
이대길: 지속가능한 정원이란 무엇인지 수많은 질문과 마주했습니다. 전 세계 다양한 환경 기구의 리서치에서, 지구는 생태적자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자연 자원과 서식지를 보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데까지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지 고민하듯이 말이죠.
이범수: 설계 단계부터, 지속가능성 실천의 일환으로 성수 스토어의 정원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식물은 장식적 요소가 아닌 유기적인 형태를 존중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레인 가든은 어떻게 디자인의 필수 요소가 되었습니까?
이범수: 레인 가든(The rain garden)은 이솝 성수 스토어 지붕에서 떨어진 빗물을 물탱크로 흘려보낸 뒤 식물에 물을 주는 용도로 사용하는 시스템이에요. 비가 오면 정원에 물이 고여 작은 연못이 조성되기도 하죠. 수돗물은 사용하기 전에 정수처리를 하는 전통적인 상수 시설에서 끌어와야 하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반면, 빗물은 그저 받아 사용하기 때문에 실용적이고 지속가능한 해법이며 자원을 아낄 수 있죠.


경사지에 정원을 조성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대길: 일정한 면적에서 땅을 좀 더 아래로 파면서 협소한 공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형태로 인해 빗물이 정원 바닥으로 서서히 모이는 공간이 형성되어 지형이 더욱 다채로워집니다. 마지막으로 이솝 답게, 감각적이고 조용한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물은 디자인 전반에 걸쳐 중요한 상징으로, 지역성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성수라는 이름은 깨끗하고 고마운 물을 의미하며, 서울의 자연 랜드마크 중 하나인 한강에서 인접한 곳으로 식수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물의 의미는 빗물 재활용 시스템을 조성함으로써 더욱 강조되며, 이는 지속가능성을 우선시하는 의식 있는 조치라고 볼 수 있죠.
이범수: 레인 가든의 장점 중 하나는 기존 자원을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물은 유한한 자원이며,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순환 과정을 통해 발생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연의 연속성을 반영하고, 정원을 디자인할 때 이러한 측면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특히 레인 가든은 빗물이 배수관으로 되돌아가기 전에 식물과 흙을 거치면서 정화된다는 점에서 재생 사이클로 볼 수 있습니다.
이솝의 기풍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까?
이대길: 시적이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온라인 경험에서도 그렇고 물리적 공간에서 받았던 따뜻한 상호작용에서도 그렇습니다. 이솝이 사람이라면 조용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세밀하고 귀여운 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범수: 이솝 스토어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이솝의 디자인 철학은 불필요한 디테일을 배제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정원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설치할 것을 고려했지만 사려 깊은 단순함을 선호하는 이솝 디자인 코드로 돌아가서 장식적인 스타일을 추구하기 보다 식물이 자연의 리듬에 맞춰 야생에서 자라는 매력적인 공간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계단을 빼기로 했어요.


지속 가능한 정원을 위해 어떤 식물을 들여왔나요?
이대길: 지혜로운 정원사는 식재할 식물군을 구성할 때 식물이 원래 살던 환경을 최대한 존중해 토양, 기후, 계절 등 자연의 특성을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정원의 경관은 계속해서 바뀌고 때때로 돌봐야 하기 때문에 정원의 완성이 여정의 끝은 아닙니다. 디자인에서 물이 핵심 요소이므로 동의나물, 아스틸베, 가는잎처녀고사리 등 습지 환경에 적합한 다양한 식물종을 선택했습니다. 차후에는 바이올렛 리프 헤어 밤의 성분으로 사용되는 향기제비꽃도 심을 계획입니다.
이범수: 정원 중심에 심은 수목은 디자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죠. 얼마나 크게 자라는지, 어떤 수목인지 등에 따라 정원 분위기가 달라지거든요. 하지만 나무를 고를 때조차 물에서 잘 자라야 한다는 점을 가장 우선시했기 때문에 수종을 찾는 데 애를 먹었어요. 그렇게 계속 의논하고 고민하며 발품을 팔아 결국 흑자작나무를 찾아냈습니다.
어떤 정원 모습을 구상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이대길: 풍부한 물에서 충분한 영양을 받아 촉촉하고 생기 있는 식물들의 모습입니다. 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제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던 이미지로, 이솝 성수 정원의 핵심입니다. 인간이 사라진 후라도 정원이 온전하게 유지되고 자족하고 번성하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우리 정원이 인위적인 느낌이 없이 그대로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범수: 정원은 계절이나 시간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와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발을 들여 놓으면, 제 마음 속에서는 부드러운 아침 햇살을 받아 식물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성수 스토어의 리테일 컨설턴트와 호기심 많은 방문객들이 정원의 독특한 캐릭터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 바랍니다.

정원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기를 바랍니까?
이대길: 시골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옹달샘은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둑을 따라 걸으며 기분이 상쾌해지는 목가적인 풍경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고객들이 정원에서 비슷한 위안과 휴식을 경험하게 된다면 대단한 찬사가 될 것입니다.
이범수: 이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원을 방문한 뒤 브랜드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지길 바랍니다. 이솝에 대한 신뢰가 저희가 만든 정원을 통해 굳건해진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정원은 연중 오픈합니다. 이 공간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대길: 이솝의 정원은 빗물을 활용하는 레인 가든이잖아요. 빗물을 모아 재활용하는 모습을 보며 물의 순환과 앞으로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속 가능성을 부여한 매장을 만든 노력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단초가 되길 바라고요.
이범수: 정원은 오감으로 만끽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솝 방문객들에게 사진을 찍는 것은 잠시 미뤄두고 잠시 멈춤의 순간을 만끽하고 이 장소와 교감할 것을 권합니다. 느긋하게 시간을 갖는다면 물가에 천천히 퍼지는 물결이나 정원으로 부드럽게 스미는 바람과 같은 매력적인 경관이 전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