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더 렛저

우리는 머나먼 은하계에 존재할지 모를 지적 생명체의 흔적을 계속 찾고 있다. 스티븐 호킹의 이런 일리 있는 지적에도 말이다. '우리는 외계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인간과, 인간보다는 덜 지적인 유기체 사이의 조우는 그들 입장에서 처참한 재앙이 되었다. 더 진보된 기술과 원시적 기술을 지닌 두 문명이 만났을 때도 덜 발달된 문명에 나쁜 결과가 초래됐다.' 우리는 왜 그토록 지구 밖의 또 다른 존재를 갈구하는가? 미지의 다른 인간이나 외국인, 심지어 자신과 약간 다른 대상에게도 금세 날을 세우는 게 인간의 성향인 듯한데 말이다. 작가 토니 모리슨은 2017년 발표한 논픽션 타자의 기원(The Origin of Others) 에서 이런 본능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백인 남성 작가가 미국 문학계의 규범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해 고찰한다. 작가는 이렇게 묻는다. ''타자 만들기(othering)'가 주는 편안함의 속성은 무엇인가? 환상? 권력? 어딘가 소속되었다는 짜릿함?' 사람들이 바라는 호기심과 공감은 우리는 방어 자세를 취하며 익숙하고 안전한 것, 이미 경험한 것과 정해진 답 속에 둘러싸여 있고 싶은 충동보다 더 강력하다. 외계인은 우리가 이룬 문명 전체에 '삭제' 버튼을 누를지 모른다. 아니면, 희망컨대 인간 스스로 발견하려면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몇 광년은 걸릴지 모를 기술을 우리에게 전수해줄지도 모른다. 둘 다 허황된 판타지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들에 흥분하고 자극받을 수 있는 능력이 꿈틀대고 있다. 낯섦은 불편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이 공식은 외계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일에도 해당된다. 볼테르가 말한 이해의 힘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이해는 '타인의 뛰어난 점을 우리 것이 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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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인간의 경험이 공유한 동질성에 귀를 기울이는 시

미국의 시인 제인 허쉬필드(Jane Hirshfield)는 파울 첼란(Paul Celan),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 체슬라브 밀로즈 (Czeslaw Milosz) 및 그들과 동시대 시인들의 작품과 1980~90년대 초 캘리포니아 베이 에이리어(Bay Area)를 주 무대로 한 실험적 시인들의 작품을 접함으로써 '설명되지 않은 영역에 좀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스칸디나비아, 동유럽, 남미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 허쉬필드는 '한편으로는 더욱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다른 한편으로는 작고 개별적이며 어찌 보면 돌멩이 조각 같은 경험을 품고 있는, 개인적으로는 '조약돌'이라고 생각하는 시를 만날 수 있었다' 허쉬필드는 미국도서비평가상( 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 ) 최종후보에 오른 주어진 설탕, 주어진 소금(Given Sugar, Given Salt)와 T.S. 엘리어트 상(T.S. Eliot Prize) 수상작 후보에 오른 에프터(After) 등을 포함해 여덟 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또한 일본 고전 시대의 여성 시인들의 작품을 공동번역하기도 했으며 여러 권의 에세이집도 출간했다. 사회정의, 환경문제 등의 주제에 공명하고 인간에게 공통되는 경험을 왕성하게 탐색하는 그녀의 시는 명징한 울림을 준다. 앞서 언급된 노벨문학상 수상자 체슬라브 밀로즈는 허쉬필드의 시에 대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이라 호평했다. 허쉬필드는 생물학과 물리학에 대해서도 오랜 관심을 품고 있다. 지난해에는 과학을 위한 시인(Poets For Science)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워싱턴 D.C.에서 열린 과학을 위한 행진(March Science) 행사에 동참하기도 했으며 그곳에서 2017년 1월 24일 미 연방정부 행정처 웹사이트에서 과학 관련 정보를 삭제한 시책에 대한 항의와 경계의 의미로 '다섯 번째 날(On the Fifth Day)'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자기 고백적이기보다 보편성에 천착한 그녀의 시는 우리가 함께 공유한 감정을 구현해낸다. '단순함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타자의 삶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삶, 새, 물고기, 손에 들린 그릇, 나무, 심원한 시간(지질학적 시간), 인화할 수 있는 불안정한 지구 같은 것 말이다. 경계는 그렇게 좀 더 가변적인 어떤 것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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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최고의 여행은 따뜻이 맞아주는 현지인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베트남 북서부에 위치한 사파는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높은 고산지대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다. 아름다운 장관이 펼쳐지는 이곳에는 해발 3,143m 높이의 베트남 최고봉, 판시판(Fansipan)산이 구름을 뚫고 우뚝 솟아 있고 초록과 황금색으로 물든 계단식 논이 가파른 골짜기를 수놓으며 그 사이로 여행객들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트레킹을 한다. 하노이에서 라오까이(Lao Cai)행 야간열차를 타면 아침 식사 시간쯤 라오까이에 도착하는데 여기서 30km쯤 더 가면 사파마을이 나온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기 휴양지였던 사파마을은 이제 세계 각지에서 모인 관광객, 베트남 현지주민, 구릉지대 소수민족들이 한데 어우러진 장소가 됐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중앙시장이 있는데 직물도 팔고 바로 그 옆에서 다양한 부위의 신선한 고기도 거래된다. 트레킹을 원한다면 사파 시스터즈(Sapa Sisters) 에서 가이드를 구하는 편이 좋다. 사파 시스터즈는 현지 흐몽(Hmong)족 여성들이 만들고 전적으로 이들이 운영하는 트레킹 여행사다. 트레킹 가이드 짜이(Chi), 랑양(Lang Yang), 란도(Lan Do), 자오(Zao)는 사파의 산길과 대나무숲, 폭포의 위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또한 현지인이 사는 집에서 묵을 수 있도록 주선해주기도 한다. 간단한 침낭과 모기장, 현지인이 직접 만든 음식은 트레킹으로 욱신거리는 고단한 몸을 쉬기에 부족함이 없고 다른 사람의 삶과 관점을 엿볼 수 있어 마음도 흡족하게 채워질 것이다. 구릉지대 소수민족의 요리에는 고기의 모든 부위가 사용된다. 훈제하거나 염지한 다양한 고기 요리가 따뜻하게도 차갑게도 나오며 여기에 직접 쌀로 담근 독한 베트남 전통주 르어우(ruou) 한두 잔도 곁들여진다.

 
독서

대담한 신예 작가의 혁신적인 스타일과 형식

런던에 거주하는 인도네시아 출신의 시인이자 비주얼 아티스트, 활동가인 카이라니 바로카(Khairani Barokka) 는 그녀의 시화집 토착종(Indigenous Species)에서 강렬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가 택한 스타일은 말로 간단히 설명하기 어렵다. 청록색 바탕 위에 화사한 '핑크, 오렌지, 블루, 그린'이 뒤섞인 강물이 뱀처럼 구불구불 흘러가고 이를 따라 시구가 이어진다. 강물은 이 책에 담긴 여러 시각적 요소('글리치 아트(glitch art)', 사진, 전통적 문양 등) 중 하나다. 바로카는 시를 통해 한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녀는 납치범들에 의해 오염된 물, 쓰레기 더미, 남벌과 고사로 훼손된 땅을 거쳐 상류로 끌려간다. 납치범들은 소녀를 깊은 밀림 속으로 끌고 가는데 그들이 미처 몰랐던 사실은 소녀가 밀림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이다. 그녀가 몰래 탈출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곳이다. 바로카는 소비주의, 식민주의의 해로운 유산, 자연서식지 파괴, 장애인 차별주의 등의 문제에 관심을 둔 작가이다. 토착종의 출판사 틸티드 액시스(Tilted Axis)는 주술적인 느낌을 주는 이 책을 두 가지 판본으로 출간했다. 하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판본으로 양각의 브라유(Braille) 점자와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돋을 새김된 이미지를 넣었다. 비시각장애인을 위한 판본에는 모든 페이지에 양각되지 않은 '브라유' 점자의 상징적 흔적을 희미하게 넣어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사각 지점을 연상토록 했다. 존재와 상실이라는 시의 주제가,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감각되거나 감각되지 않는 모든 세세한 부분에 어우러져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이 불타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리고 10여 년 후 그녀의 첫 일자리는 보르네오섬에 있는 인도네시아령 칼리만탄(Kalimantan)에서 BBC 제작 프로그램의 음향효과를 녹음하는 일이었다. 그때 녹음기에 잡힌 소리는 나무를 벌목하는 톱이 끝없이 윙윙대는 소리였다. 작가의 이런 경험은 토착종에 배치된 수수께끼 같은 시각적, 언어적 장치들이 소중한 나무에 대해서든 여성의 신체에 대해서든 소멸의 고통을 말하고 있음을 귀띔해준다. '나는 언제나 나무와 강을 좋아했고 나무와 강에 둘러싸여 그들의 언어로 말해보는 것을 좋아했다.' 바로카는 일렉트릭 리터러처(Electric Literature)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납치되어 보트에 결박된 소녀가 강인하기를, 그녀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원했다.

 
음악

논바이너리(non-binary, 비특정) 성소수자의 서사에 존재감과 목소리 부여하기

호주의 싱어송라이터 에블린 아이다 모리스가 올 4월 자신의 이름을 타이틀로 한 음반을 출시했다. 뮤지션으로 입지를 굳히고 열렬한 팬층을 확보한 그는 파이클렛(Pikelet)이라는 예명으로 네 장의 실험적인 팝 음반을 발표한 바 있다. 자신이 여성과 남성 중 어느 쪽인지 밝히지 않은 멀티플레이어 모리스는 이제 파이클렛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비특정 성으로 살아가는 것의 취약함을 표현하고 그 복잡성을 즐기는 비중 있는 작품을 완성했다. 모리스는 20대 시절 멜버른에서 활동한 '트루 래디컬 미러클 앤 베이스볼(True Mirace and Baseball)'라는 펑크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묵직함, 거침, 공격성으로 단순화시킨 남성성을 표현했다. 당시에는 남성성을 전형적으로 요약한 방식이었다'. 반면 파이클렛이라는 이름으로 만든 모리스의 음악은 '여성성을 제대로 단순화시킨 버전'으로 와닿는다. '예쁘고 섬세하며 다층적이고 조화롭다.' 밀크 레코드(Milk Records)사에서 나온 이번 앨범 에블린 아이다 모리스(Evelyn Ida Morris) 는 한층 신중하기도 하고 감미롭기도 하다. 풍성한 화성구조를 담은 피아노 모음곡으로 드뷔시와 라벨을 연상시킨다는 평을 듣는다. 가사가 있는 몇 안 되는 수록곡 중 하나인 '더 바디 어피어스(The Body Appears)'는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목소리와 유하지만 진솔한 가사('내 집이 어떻게 이리 낯선가' '내 집이 어떻게 이리 적막한가. 내 집이라 부를 수 있을까?')를 선보인다. 저돌적이고 강렬한 힘으로 돌진해가는, 단정 짓지 않는 복잡한 멜로디의 비상을 담은 이 앨범을 압축한 대표곡이라 할 수 있다.

 
사람

진정성 있는 표현에 몰두하는 대담한 시선과 열린 마음

라파엘라 로젤라(Raphaela Rosell) 는 호주의 예술가 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그녀의 작품은 소외된 지역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해체한다. 현재 브리즈번(Brisbane)에 거주하는 작가는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 주의 님빈(Nimbin)에서 성장하며 소규모 지역의 거리에서 약물 과다복용과 폭력을 목격했다. '역경과 혼란, 역기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강한 유대감도 경험했다'고 작가는 시드니 모닝 헤럴드(Sydney Morning Herald)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녀는 종종 가까운 친구나 가족을 피사체로 택하는데 특히 젊은 여성과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고군분투와 환희의 순간을 포착한다. 로젤라의 쌍둥이 자매가 10대 시절 임신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그녀는 낙태를 권유했다. '그때 나는 그녀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이런 의문이 들었다. 더 나은 삶이란 게 뭐지?' 그녀의 작품은 현실에 당당히 맞선 분투의 결과다. '많은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는 것은 '계획의 실패'가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과 기회의 한계에 대한 묵시적인 반응이다......이런 문제에 대해 파고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게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젤라는 2015년 명망 있는 세계보도사진제(World Press Photo Award)의 인물사진 부문상을 수상하고 2017년에는 PH뮤지움 여성 사진작가 지원금(PHmuseum Women Photographers Grant)의 첫 수상자가 됐다. 그녀의 작품은 사진이라는 2차원적인 평면에서도 그 내밀한 깊이가 느껴진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여성을 무책임하고 측은하며 가난에 찌든 대상으로 묘사하는 정형화된 틀을 깨고 이들에 대한 따뜻하고 명징한 시선을 제시한다.

 
영화

인종차별에 대한 신랄한 분석이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깊은 울림을 준다.

2007년 세상을 떠난 세네갈 출신 영화감독 오스만 셈벤(Ousmane Sembène)은 현대 아프리카 영화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마흔 살 가까운 나이에 첫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는 이름 난 소설가였다. 1966년 발표된 그의 첫 장편영화 블랙 걸(Black Girl) 은 최저 예산으로 완성된 탄탄하고 강렬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음비신 테레즈 디오프(Mbissine Thérèse Diop)가 연기한 젊고 아름다운 디오우아나(Diouana)는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Dakar)에서 부유한 백인 가족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백인 가족이 프랑스 앙티브(Antibes)로 이주하면서 디오우아나가 함께 가주기를 원하자 그녀는 '모국'을 알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에 설렌다. 하지만 막상 프랑스에서의 삶은 지루하고 비인간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다카르에서는 백인 부부에게 많은 직원이 있었지만 프랑스에서 유일한 일손이 되어 버린 디오우아나는 다른 사람의 빈자리를 메우고 요리를 비롯해 모든 집안일을 책임지는 하녀가 된다. 그녀는 부인에게 하이힐을 신었다고 혼이 나고 집에 오는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시중을 들며 손님에게서 추파를 당하기도 한다. 시장에 갈 때만 집에서 나갈 수 있고 일정한 급여나 휴일도 없으며 여행도 할 수 없다. 영화는 탈식민지 시대에도 인종차별과 정신적 노예 상태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참혹한 현실을 그린다. 주인 여자는 남편에게 하녀가 '쇠약해진' 것 같다고 무덤덤하게 말하면서 정작 디오우아나의 고통을 덜어주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 데뷔 영화에 이어 셈벤 감독은 파아 키네(Faat Kiné) , 무라데(Mooladé)와 같은 아프리카 여성과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한 주목할 만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스킬로스의 고대 그리스 비극처럼 전개되는, 순수함의 침식을 다룬 블랙 걸이 가장 빼어난 대표작으로 꼽힌다.

 
관람

권력과 조직, 개인성에 대한 고찰을 담은 감동적인 공연

독일의 실험적인 안무가 사샤 발츠(Sasha Waltz)와 14명의 무용수가 브루클린의 BAM의 무대를 뜨겁게 달굴 준비를 하고 있다. 관객을 전율케 할 피조물 (Kreatur) 이라는 단기 공연(11월 2~5일)이다. 2017년 베를린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2015년 연속(Continu)이라는 공연을 BAM 무대에 올린 적이 있는 발츠가 절제와 폭발력을 동시에 지니는 안무로 다시 돌아온다. 무용수들은 상체에 마치 대형 쇠수세미처럼 보이는 은색의 촘촘한 그물망을 휘감고 있다. 반짝이는 검정 플라스틱판 아래와 주변으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대결을 벌인다. 무용수들은 좁은 판재와 씨름하고 그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스테어마스터(stairmaster)를 연상시키는 수동으로 선회하는 이동식 계단을 오른다. 피조물(Kreatur)은 인간의 육체와 권력 간의 긴장 관계, 예술작품뿐 아니라 삶에서도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이분화된 구도, 권위와 복종, 자아와 타아, 자기애와 자기혐오 등을 고찰한다. 뛰어난 콜라보레이션으로 작품은 더욱 빛을 발한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아이리스 반 헤르펜(Iris van Herpen)이 만든 의상은 전통적인 수공과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때로는 제2의 피부처럼 무용수의 몸에 밀착되기도 하고 때로는 미래적인 갑옷처럼 돌출하기도 하는 웨어러블 아트(wearable art) 조형물을 탄생시켰다. 조명 디자인은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와 영화감독 미카엘 하네케( Michael Haneke), 그리고 행위예술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의 작품 배경을 만들어낸 우루스 쉬네바움(Urs Schönebaum)이 맡았다. 마지막으로 베를린과 뉴욕에서 활동하는 트리오 사운드워크 콜렉티브(Soundwalk Collective)의 인더스트리얼 무드음악이 더해졌다.

 
더 파리스 리뷰

문화적 분열 사이에 서 있는 연인의 불협화음의 순간

캐롤린 개이저(Carolyn Gaiser)의 '차이점 (Difference)' (1967)은 로마에 사는 이름 없는 젊은 미국인 연인에 대한 매우 짧은 단편이다. 남자는 유대인이지만 여자는 유대인이 아니다. 여자는 남자의 문화적 정체성과 성장 과정의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것에 마음이 상한다. 여자는 편안한 휴식 중 마음이 풀어져 이런 생각을 한다. '그는 안경을 안 쓰면 친근해 보여.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이해심을 갖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야.' 하지만 그날 아침 남자가 내뱉은 첫 마디는 날카롭기만 했다. '도대체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여자는 전기 히터 위에 옷을 올려 두었다.) 아침 식사를 하러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으로 가는 길에도 여자는 평정심을 회복하지 못하고 그녀가 했던 모든 말과 생각을 의심해본다. 그들은 외국에 1년 이상 살아서 '기념물을 볼 때마다 매번 요란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가질 법한 정도의 감탄으로 오벨리스크'를 바라본다. 여자는 다음날이면 남자가 키부츠에서 일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떠난다는 사실에 단단히 마음을 먹는다. 카푸치노와 눅눅해진 빵을 먹으며 그녀는 유대인으로 사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있다며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다수가 유대인이었던 아이들과 함께 중등학교에 다녔다. 그 친구들은 모두 나보다 부자여서 승마를 하고 피아노와 발레를 배우고 잘 꾸며진 지하실에서 파티를 열곤 했다. 파티에서는 크림소다를 마시고 고급스러운 유대인 성인식 선물을 받았다. 놀랄 것 없이 성마른 그녀의 말은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해소시키지는 못한다.

 

 

오드리 헬렌 웨버(Audrey Helen Weber)의 일러스트레이션

‘Those who are awake all live in the same world. Those who are asleep live in their own worlds.’

Heracli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