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렛저

2018년 5월호

“당신은 말하죠.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고.” 비틀즈는 이렇게 노래한 뒤 경고를 추가합니다. 총 비용은 ‘파괴’, ‘미워하는 마음’이라고. 그러나 현 상황의 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과연 이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더는 젊은이 특유의 독단과 열광적 행동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 장애물은 무관심과 산만함, 물질적 욕망입니다. 어떤 대의에 뜨겁게 몰입하기 위해서는 정력과 매일같이 도약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냉전 이후에는 조금은 느리지만 마침내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할 차례임이 거의 확실해 보였지만, 광신주의와 시민사회의 혼란, 난폭한 프로파간다가 없다고 여겨진 여러 국가에 스트롱맨 정치(strong-man politics)가 회귀하면서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그에 따라 지난해에는 과열되고 양극화된 정치적 분위기가 많은 이들에게 적극적인 동기 부여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워싱턴 D.C.에서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 시위를 조직한 총격 사건 생존 학생들의 번뜩이는 기발함과 비극을 행동으로 바꿔놓은 그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지금껏 대다수 사람들이 다루기 힘들다고 여겨온 문제를 들고 나와, 얼마간의 자극이 있어야만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취하며 과거에는 미온적인 의견과 기도만 해오던 유명 인사들의 지지를 이끌어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직접 도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점점 더 많은 수의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이 대의를 위해 금전적으로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나 심지어 직접 부딪치며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비인도적 이민 정책에 항의하는 공항 시위나(이미 한 세기 전에 이와 유사한 불평등에 대해 고민했던 노벨상 수상자 에밀리 그린 볼치의 선구적인 활동은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게릴라식 환경운동, 심지어는 대중 시위 현장에 쓸 발칙하고 통통 튀는 피켓을 제작하기 위한 미술 공예 모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비디우스는 말합니다. “돌보다 단단한 것이 어디 있는가? 물보다 약한 것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약한 물이 단단한 돌에 구멍을 뚫는다.” 계속 저항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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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변치 않는 유산을 남긴 조용한 농업 혁명가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완벽하고 풍요로운 자연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이따금 숲 속을 거닐어봐야 한다. 거기서는 동물과 키 큰 나무와 관목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이 모든 일은 인간의 창의력이나 개입 없이도 이루어졌다.” 몬산토(Monsanto)가 득세하고 석유산업 발전이 나날이 가속화하며 그 어느 때보다 기후 변화의 폐해가 두드러지는 시대에 후쿠오카(1913~2008)는 기적과도 같은 수확량을 내고 사막 같은 불모지를 재녹화(再綠化)할 수 있는 이른바 ‘아무것도 하지 않는(do-nothing)’ 농법을 주창한 조용한 혁명가였다. 그는 미생물학과 농업과학을 전공했으나, 20대 초반 폐렴에 걸린 뒤에 이러한 학문들의 서구적이고 간섭주의적인 접근법을 버리게 되었다.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생명의 전 주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얻은 것이다. 그는 여전히 회복 중이던 어느 날 동틀 녘에 요코하마 만을 바라보다가 일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자연은 그 자체로 완벽한데, 인간이 그것을 증진 및 활성화하거나 다른 식으로 이용하려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이었다. 후쿠오카는 가족 농장으로 돌아가 자신의 새로운 철학을 시험해보기로 마음먹었고, 바람이 짚을 흐트러뜨림으로써 모종이 싹을 틔운다는 것에 주목해 짚을 마구 뿌리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그는 또 여러 채소종자를 섞어 감귤나무 사이사이의 빈 공간에 뿌림으로써 씨앗이 자라고 싶은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생하게 해주었다. 후쿠오카는 초기 몇 년간 흉작을 겪었지만 꾸준한 창의력과 무엇보다도 끈기를 발휘했다. 그는 친자연적 식품과 생활 양식 운동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전 세계를 다니며 새로운 현지인들을 관찰하고 농부들에게 조언을 전했다. 그의 농법을 설파한 얇은 저서 짚 한 오라기의 혁명(1975년)은 그와 뜻을 같이하는 농부와 텃밭 농사꾼, 영속농업(permaculture) 지지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성서와도 같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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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석 밑에 해변(Sous les pavés, la plage)’을 넘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프랑스 영화감독 크리스 마르케의 1977년작 붉은 대기(Le Fond de l’air est rouge)는 1968년 5월 혁명 당시 프랑스 신좌파가 내세운 슬로건에서 제목을 따왔으나, 영어로는 체셔 지역에서 친근한 고양이 없는 미소(A Grin Without a Cat)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개봉한 지 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이 영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기록 영상을 훌륭히 배치한 1960-1970년대 반정부 운동을 고찰하는 ‘에세이 영화’인 고양이 없는 미소는 다큐멘터리와 개인적 반성을 넘나들고 다양한 혁명가들을 아우른다. 피델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의 영상도 있고, 베트콩의 진지라 생각한 곳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미 공군 조종사의 영상도 있다. 프랑스 공산당 지도자와 열성적인 학생들의 인터뷰도 등장한다. 내레이터의 해설은 능숙하지만 결코 교훈적인 어조를 띄지 않는다. 영화는 반정부 운동의 대표적인 사건들을 일본의 미나마타 수은 중독, 살바도르 아옌데의 부상, 워터게이트 스캔들 등 동시대에 일어난 다른 사건들과 함께 엮어놓는다. 고양이 없는 미소는 설득력 있는 저널리즘은 물론 그에 못지않게 빼어난 시적 감수성까지 담고 있다. 고양이와 너구리의 모티프가 특정한 몸짓과 함께 반복해서 등장하는 식이다. 마르케는 자료에 지나치게 천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떠들썩한 시대와 강렬한 캐릭터들이 스스로 보여주도록 판을 깔았다.

 
독서

지혜롭고 굳건한 사람의 회고담

모로코 작가 압델라티프 라아비는 1942년 페스에서 태어났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가끔 내가 어쩌다 작가가 되었는지 되돌아보곤 했다”며 방 두 칸짜리 집에서 함께 자란 일곱 형제 자매와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내기 위해 거의 노예처럼 살았던” 문맹인 그의 부모를 회고했다. 문자 언어에 대한 그의 흥미를 촉발시킨 이는 어머니였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어머니는 내게 강렬하게 각인된 존재다. 풍부한 언어와 무수한 심상,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닌 분이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처지에 자주 분개하셨다.” 라아비는 프랑스어 교사가 된 뒤 수플레(Souffles)라는 문예지를 창간하고 선동가적인 시인과 화가들로 편집진을 구성했다. 이 잡지는 1972년에 발행 금지되었으며 같은 해 라아비는 ‘의견을 표현한 죄’로 수감되었다. 라아비에 의하면 당시 모로코 국왕 하산 2세는 학생 봉기를 진압한 뒤 “소위 지식인만큼 국가에 큰 위험을 가하는 존재도 없다. 여러분이 모두 글을 모르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라며 국민을 꾸짖었다. 라아비는 1980년까지 감옥에 있다가 1985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항아리 밑바닥(The Bottom of the Jar)은 유년기와 가족에 대한 라아비의 애정 어린 회고담으로 시인의 풍부한 운율과 유려한 구절을 귀 기울여 포착해낸 앙드레 나피스-사헬리의 아름다운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다. 1950년대의 페스는 가령 대마초와 이야기 들려주기를 똑같이 즐기는(둘 사이에 일종의 연결고리를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다) 삼촌 같은 생동감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다. 타하르 벤 젤룬, 드리스 슈라이비, 모하메드 추크리 같은 모로코 작가들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이 성장소설과 따뜻하고 지혜로운 작중 화자 및 그의 재치와 놀라운 의지력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음악

시기 적절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뜨거운 항의 선언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대런 헤이먼은 2002년 해체된 포크락 그룹 헤프너(Hefner)의 프론트맨으로 활약했다. 그룹 해체 후 그는 영국 괴짜 사회에서 점차 확고한 자리를 구축했다. 그의 창작물은 놀랍도록 기이하고 광범위하며 기존 형식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형식을 두려움 없이 선보였다. 가령 17세기 영국 내전에 관한 노래들로 이루어진 음반이나 16세기 마녀재판을 포함해 에섹스 지역의 역사를 탐구한 3부작 음반, 영국의 직물 디자이너이자 작가, 사회 운동가인 윌리엄 모리스가 만든 민중가요 열 곡에서 제목을 따온 사회주의자들의 성가(Chants for Socialists) 같은 음반이 대표적인 예다. 헤이먼은 몇 년 전 월섬스토에 위치한 윌리엄 모리스 갤러리에 들렀다가 그 노래들이 실린 책자를 우연히 보게 됐다. 그는 모리스를 화가이자 공예가로만 알았지, 저항운동을 한 것은 잘 몰랐고, 음유시인이었다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모리스의 열 곡을 요즘 시대에 맞게 길이를 줄이고 다듬은 헤이먼의 결과물은 2015년 런던 서부의 독립 레이블 wiaiwya에서 발매되었다. 헤이먼은 월섬스토 사람들을 무작위로 초대해서 갤러리와 모리스의 켈름스콧 저택에 다같이 모여 재작업한 곡들을 함께 불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와도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의 핵심은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대개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는 녹음을 겹쳐 넣고 목소리를 늘리는 방식으로 후렴을 만든다. 그런데 모리스가 유년기를 보낸 집에서 30여명의 서로 다른 목소리로 그 노래들을 부른 건 대단히 멋진 일이었다.” 헤이먼은 이 음반을 일종의 “규합의 외침이나 선언”인 동시에 “나 같은 사람들, 어쩌면 정치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주는 위안”으로 생각했다. 음반의 여덟 번째 수록곡인 ‘노동의 목소리(The Voice of Toil)’는 특별히 커다란 울림을 준다.

 
건축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공유하는 건축 노하우

소위 스타 건축가와 (거의 예외 없이) 크고 자기 과시적인 그들의 건축물을 둘러싼 열풍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셰필드대학교 건축학부의 두 교수 타탸나 슈나이더와 제러미 틸에 의하면 그 답은 공간의 힘이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두 사람이 출범시킨 단체의 이름이기도 한데, 그들은 설계도를 그리는 건축가보다 해당 공간에 거주하는 이용자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공간의 힘(Spatial Agency)에 소속된 구성원들은 건축 프로세스에 관한 기술적 훈련 및 지식을 다른 이들과 공유함으로써 어디서 어떻게 사느냐와 관련해 그들에게 의미 있는 참여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의 유연한 철학은 수많은 프로젝트에 적용될 수 있다. 현재까지 나타난 구체적인 예는 1996년에 설립된 다국적 비정부기구(NGO)로 도시나 국가 차원에서 활동하는 도시 빈민과 노숙자 모임들의 ‘연맹’을 대변하는 국제 판자촌·빈민가 거주민 연합(SDI)부터, 오스트리아의 프로이트식 정신분석 유산을 기본 토대로 삼아 1968년에 설립된 빈의 건축설계사 쿱 힘멜블라우(Coop Himmelblau)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다양하다. 슈나이더와 틸은 “건축에서 제2의 역사, 개인 영웅으로서의 건축가의 위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행위 주체들이 다른 이들과 상호 작용하고 다른 이들을 대리하는 보다 협력적인 접근법으로 대체하는 새로운 역사를 여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공간의 힘이 보유한 제휴 프로젝트들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는 깊고도 다양하다. 이곳 설립자들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웹사이트에 있는 모든 사례에는 하나같이 현 상황을 개선하려는 혁신적 의도가 담겨 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행동주의부터 교육학, 출판부터 네트워킹, 물품 제작부터 정책 기획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다양하며 이 모든 노력은 다른 이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목표 아래 이루어진다.”

 
청취

언어의 희열과 온기와 힘

더 파리스 리뷰 팟캐스트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소박하게 시작한다. “여러분은 진행자가 많이 떠드는 걸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글이 스스로 말하게 하려 합니다. 잡지 속에서 항상 그래 왔듯이 말이죠.” 맨해튼 번화가의 멋진 시인 에일린 마일스가 더없이 기꺼워하며 제임스 슈일러의 시를 낭독하는 첫 순간부터 이러한 담담한 태도는 무척 적절하게 느껴진다. “결의에 찬 잡종개가 푸른 이슬에 검은 흔적을 남긴다. 하루는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남는 것은 너무 적다.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을 달라면서 받는 것은 너무 적은 당신이 문제인가?” 물론 얼마간은 마일스의 시가 슈일러의 노골적인 강렬함에 빚진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낭독에 이어 월러스 숀이 데니스 존슨의 어둡고 으스스하게 웃기는 이야기 ‘히치하이킹 중의 교통사고’를 짓궂은 목소리로 읽어준다. 뒤이어 아카이브의 보물이 등장한다. 바로 파리스 리뷰의 창립 편집자 조지 플림턴과 마야 안젤루의 대화다. 대화 내내 안젤루는 자신의 언어 사랑을 거듭 강조한다. “저는 언어가 우리에게 해주는 일 때문에 언어를 사랑해요. 언어는 우리 존재의 고통과 영광과 미묘한 뉘앙스를 동시에 설명할 수 있게 해주죠. 우리를 웃게 해주기도 하고요.” 플림턴은 불평등도 작품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냐고 묻는다. “아, 물론이에요.” 안젤루는 대답한다. “그리고 바라건대 제 작품에는 논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수많은 패배를 마주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이 말은 불평등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미묘한 차이이다.

 
발견

일평생 지칠 줄 모르는 대담성으로 매진한 평화주의자

열 살 무렵 에밀리 그린 볼치는 유력한 유니테리언교 목사이자 평화주의자이자 작가인 찰스 플레처 돌의 연설을 보았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확고부동한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선의 길에 동참하라고 했다. 이 서약을 한 뒤로 나는 그에 부응하겠다는 바람을 단 한 번도 저버리지 않았다.” 그녀는 1889년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브린모어 대학교 졸업반의 일원으로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수학한 뒤 소르본대학에서 에밀 르바쇠르에게 경제학을 배웠으며, 뒤이어 미국의 또 다른 여자 대학인 웰즐리 대학에 경제학과 사회학 교수로 합류했다. 슬라브계 이민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미국의 다양한 빈곤 지역에서 생활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도 갔다. “1906년 프라하의 지독하게 황량한 어느 겨울날 아침, 한 남자가 먹을 것을 찾아 맨손으로 재가 담긴 통을 뒤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사회주의로 전향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 차디찬 재에 파묻힌 맨손가락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918년 반전 활동으로 웰즐리에서 해고된 뒤에는 진보 잡지 네이션(The Nation)에 합류했다. 1919년에는 제인 애덤스를 비롯한 몇몇 유명한 여성 해방 운동가들과 함께 국제 여성 평화 자유 연맹(WILPF)을 창설했다. 그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흐른 지금까지도 이 연맹은 전 세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볼치는 무장해제 및 여러 사안과 관련해 각국 정부와 국제 기구들을 지원했다. 나치즘의 부상을 계기로 그녀는 기존 활동의 방향을 틀어 평화주의에 헌신했으며, 특정 상황에서는 ‘검을 쥐고서라도 근본적인 인권’을 수호해야 한다는 신념에 이르렀다. 볼치는 1946년 일흔아홉의 나이에 국제 여성 평화자유 연맹에서의 활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선의 길에 동참’한 그녀의 지칠 줄 모르는 실천과 헌신적인 연구, 실용주의, 친절, 대담한 행동이라는 유산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

 
관람

미술의 눈을 통해 보는 저항, 활동, 행동주의

‘불완전한 저항의 역사: 1940-2017년 휘트니 미술관 대표 소장품’ 전시에 소개된 일부 화가들은 예컨대 베트남전 종식 같은 이원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주장했다. 그에 반해 살리시족과 쿠테나이족 연합에 소속된 살리시족 일원인 존-빨리 깨닫는 사람-스미스(Jaune Quick-to-See Smith)같은 다른 이들은 모든 시민에게 적용되는 한층 강력한 시민권의 분배를 꿈꾸었다. 마사 로즐러의 1975년작 단편영화 부엌의 기호학(Semiotics of the Kitchen)은 날카로운 유머를 통해 전통적인 성역할을 허문다. 데이비드 브레슬린과 루제코 호클리, 제니 골드스타인이 책임 기획을 맡은 ‘불완전한 역사(An Incomplete History) 전은 멜빈 에드워즈부터 게릴라 걸즈, 존 조르노부터 폴 챈까지 아우르는 거의 90명 가까운 화가들의 작품을 포함하며 종료일 없이(그러니까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뜻에서) 연대순으로 계속된다. “우리는 이 작업이 완료되지 않고 계속 진행 중이라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브레슬린은 말한다. “그런 이유로 전시회 제목에 ‘불완전’이라는 말을 넣고 싶었던 면도 있다. 저항의 작업이 불완전하다는 의미뿐 아니라 작가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우리가 서로 보조를 잘 맞출 수 있을지 살펴보는 미술관의 작업도 아직 미완이라는 의미까지 담긴 것이다.” 이 전시는 런던 디자인 박물관의 ‘희망과 반대: 2008-2018년 그래픽과 정치’ 전과 훌륭한 짝을 이룬다. 8월 12일까지 열리는 희망과 반대 전시회는 인터넷 밈(meme)부터 정겨운 옛날의 행진 피켓까지 최근 시위에 사용된 각종 디자인을 선보인다.

 

 

제프리 청(Jeffrey Cheung)의 일러스트레이션.

‘Resist much, obey little.’

Walt Whit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