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렛저

2018년 4월호

우리는 급하게, 감탄하며 혹은 거드름을 피우며 시리(Siri)를 소환합니다. 특정 노래를 틀어달라고, 킬리만자로의 높이를 알려달라고, 그날 날씨에 대한 느낌을 확인해달라고, 교통 상황을 알려달라고 명령하기 위해서. 알렉사(Alexa)든 할(HAL)이든 더욱 성 중립적인 다른 미래형 가상 요정이든, 이러한 유령이 우리의 삶을 실제로 더욱 간편하게 해주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또한 (좀 더 부정적인 이론에 따르면) 위계에 대한 뿌리 깊은 갈증을 해소해줍니다. 똑똑한 로봇이 우리의 현실을 깨부수기에는 아직 이른 듯 합니다. 이들과 AI 모두 개선의 여지가 매우 클뿐더러 우리 삶에 그다지 필수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신 없이 이어지는 기술 업계의 혁신 선언 속에서 무심코 넘어가기 쉬운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아름답고도 기분 좋고 심오하게 다가올 기술이 미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이미 우리 일상에 녹아 들어 있고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다시 만드느라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바퀴’같은 물건들에는 만년필, 기계식 시계 등이 포함됩니다. 단순한 커피 머그잔. 고무줄. 신축성이 있는 양말. 빨강 립스틱. 사워 도우. 제본된 인쇄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침내 전동칫솔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게 되었고 엔지니어들은 클라우드를 좀 더 매끄럽게 동기화할 방법을 찾고 있지만, 이미 증명된 것들을 우린 쉽게 당연시하곤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부상하는 기술에 대해 이미 고착된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을 경고하는 ‘아마라의 법칙’에 성문화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기술의 영향을 단기적으로는 과대평가하고 장기적으로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오랜 세월로 증명된 기술의 목록에는 다소 비효율적인 디자인이라고 볼 수도 있는 USB 인터페이스와 쿼티 키보드와 같은 유용한 업계 표준도 포함됩니다. 속도가 항상 중요한 건 아닙니다. 일례로 가전용 전자레인지, 뉴스 사이클, 심지어 향수 어린 비통함을 불러일으키는 콩코드가 있습니다. 제대로 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이라면 호기심은 유지하면서도 편리함의 족쇄는 멀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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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세포 수준에서 목록화한 인체

더욱 정확한 인체 생리 모델이 존재한다면 신종 약물 개발을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기존 치료 방식도 더욱 정밀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3개의 최첨단 연구소(MIT와 하버드의 브로드 연구소, 영국의 생어 연구소 및 챈 저커버그 바이오허브) 소속 과학자들은 인간 세포 지도(Human Cell Atlas)를 5년 내에 완성하겠다는 야심 찬 신규 프로젝트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 아틀라스의 목적은? ‘인체를 생명의 근본적 구성 단위인 세포 수준에서 모두 총체적으로 담은 지도를 만들어 인간 건강 및 질병 진단, 관찰 및 치료의 근거로 삼는 것’뿐이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37.2조여 개 세포를 목록화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각 세포에 분자지표(molecular signature) 꼬리표를 붙이고 신체 내부의 입체적 ‘우편번호’도 부여한다. 각 세포를 분리, 태깅하고 작은 칩에 새길 수 있도록 세포 미세유체역학(cellular microfluidics)이 활용되는데, 이 프로젝트는 이러한 혁신적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종전의 시도로는 300여 종의 세포가 확인되었고, 더 많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얼마나 더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 생어 연구소의 마이크 스터빙턴(Mike Stubbington)MIT 테크놀로지 리뷰(MIT Technology Review)와의 인터뷰에서 ‘놀라운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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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함축적이고 가벼운 문장으로 그린 디스토피아적인 일본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다와다 요코는 일본어와 독일어, 2개 언어로 글을 쓰며 카프카 및 파울 첼란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다와다의 신작 헌등사는 기술로 끝내 망가진 세상을 상상한다. 가장 어린 세대인 ‘얼리 어답터’가 더욱 강인한 노인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잿빛 수염의 약한 존재로 전락한다. 주인공 ‘요시로’는 아침마다 빌린 개와 함께 조깅하는 100세 노인이다(영문 소설은 다와다의 전작 개 신랑 들이기를 작업한 능숙한 번역자 마거릿 미츠타니가 옮겼다). 요시로는 증손자 무메이의 시중을 드는 게 일상이다. 무기력하고 부서질 것 같은 이 소년에게는 아침 일과마저도 많은 시간과 이중의 수고가 들어간다. 후쿠시마가 연상되는 오염된 풍경을 배경으로 둘 사이의 따뜻한 연대감만이 즐겁게 그려진다. 이름 없는 재난 이전에 탄생한 요시로 세대는 신기하게도 생이 연장되었다. 반면,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음식을 씹거나 걷기도 어려워한다. ‘노인 세대는 죽을 수 없게 되었다’고 다와다는 얘기한다. ‘영생이란 선물과 함께 증손자 세대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끔찍한 임무가 주어졌다.’ 요시로와 무메이는 기초적인 ‘임시’ 주거지에서 살아간다. 노인은 매일 아침 자전거로 아이를 등교시킨다. 둘은 무메이가 높은 IQ를 지닌 덕에 특사(혹은 경고)로 외국으로 보내질 수 있을지 관료의 결정을 기다린다.

 

 

 
인물

농장에서 나노 기술로: 포기할 수 없는 배움에 대한 갈증

남아프리카 레소토에서 자란 과학자 테벨로 뇨콩(Tebello Nyokong)은 격일로 학교에 다녔다. 등교하지 않는 날에는 소를 돌봤다. 보통 남자아이가 하는 일이지만, 뇨콩은 그 일을 하면서 학문적 성공의 바탕이 된 노동관을 체화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뇨콩은 상을 받은 화학자이자 나노 기술 및 광역동 치료 연구자, 그리고 로즈 대학교(Rhodes University)에서 재임 중인 교수이다. 화학요법보다 유독한 부작용이 적은 광역동 치료는 인디고 염료를 이용해 암세포를 선별할 수 있게 한다. 1992년에 로즈 교수진에 합류한 이후 뇨콩은 영국 학술원(Royal Society)의 화학회 및 범아프리카 화학 네트워크(Pan African Chemistry Network)에서 인정받았고 수 십여 명 학생의 석박사 과정을 지도했다. ‘‘본인이 과학자가 될만한 재목이라 생각하는가?’ 뇨콩은 18세의 자신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물었다. 이 편지는 더 많은 여성이 STEM 커리어를 추구하기를 바라는 한 여학생 과학 클럽에 의해 온라인상에 게재되었다. ‘이렇게 말할게. 자질은 충분해. 양을 치던 시절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넌 자연을 좋아하지. 주변 환경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기를 좋아하고 집 관리를 하며 이것저것 고치길 좋아해.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기 좋아하고, 새소리를 듣고 식별하는 걸 즐거워해. 과학이 바로 그런 거야. 그걸 네가 아직 모를 뿐이야.’

 

 

 
음악

엔트로피를 황홀케 하는 언어와 음악

살바도르 달리는 파국이론(Catastrophe Theory)을 ‘세상에서 가장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이론’이라고 말했다. 파국이론은 복잡계가 무너지고 변형하는 것을 수학적으로 모델화한 이론으로 착청, 교도소 폭동, 다리의 (불)안정성 등의 이질적 현상에 적용할 수 있다. 미국인 시인 폴 케인(Paul Kane)과 아일랜드인 사운드 아티스트 케이티 오루니(Katie O’Looney)가 만든 곡으로 구성된 일곱 카타스트로피의 교향곡(Seven Catastrophes in Four Movements)은 이 이론에서 영감을 받은 언어와 음악이지만, 실제 앨범을 들어보면 놀랍게도 조화로운 소리를 만날 수 있다. 더블린에 위치한 마니아틱한 실험적인 소닉 아트 전문 라벨 파포인트 레코딩스(Farpoint Recordings)는 완성도 높고 아름다운 앨범을 선보이는데 이번에도 기대에 부응한다. 발화된 언어는 전자, 어쿠스틱 악기와 어우러져 몽환적인 효과를 낸다. 케인의 목소리는 비단결 같고, 긁고 치는 타악기, 피치카토와 키보드가 포함된 오루니의 기악법은 생기있고 독창적이다. ‘나무처럼 가만히 서서 / 흔들리며 / 받아들인다 / 다가오는 모든 것을.’ 케인이 읊조리는 이 말은 파국이론의 현장을 견뎌내는 최고의 방법에 대한 철학인지도 모르겠다.

 

 

 
관람

겸손한 매체로 만들어진 순수함과 깊이의 작품

1990년에 파리에 처음 도착한 한국인 미술가 이배는 가격, 활용도, 친근함 때문에 목탄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목탄, 즉 숯을 전통 가옥을 지을 때 집터에 묻기도 하고, 금줄에 달아 아이의 탄생을 알리기도 한다. 미술 학교, 수묵화와 서예도 생각난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는 이배 작가에게 숯의 시기였다. 숯 조각을 켜켜이 붙여 나무껍질이 연상되는 거친 모자이크 콜라주를 만들었다. 큰 조각으로는 험악해 보이는 검은 해골을 만들었다. 현재는 아크릴로 작업하지만, 이렇게 겸손하고 자연적인 매체를 사용한 이력을 알면 오늘날의 흑백 그림이 더 깊이, 더 잘 이해된다. 파리의 갤러리 페로탕(Galerie Perrotin)에서 5월 26일까지 열리는 개인 전시회 ‘블랙 매핑(Black Mapping)’에서는 검정보다 더 검은 것에 대한 이배 작가의 넓고 깊은 탐구를 만날 수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우물, 그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보고 싶은 깊이와 느낄 준비가 된 만큼의 현기증을 마주하게 된다.’ 새로운 작품에 대해 평론가 앙리-프랑수아 드바이유(Henri-François Debailleux)는 이렇게 말한다. ‘천체물리학에서의 블랙홀과 같이 너무나도 밀도 높고 압축적이어서 검정이 무한히 암흑으로 빠져들어 간다. 결국, 검정 너머라 할 수 있다.’

 

 

 
숙박

아날로그 애호가에게 완벽한 놀랍도록 아름다운 북아프리카의 쉼터

마라케시에서 수백 마일 동쪽에는 호기심 많은 관광객과 지역 나들이객이 즐겨 찾는 모로코의 보석, 찬란한 우주드 폭포(Ouzoud Falls)가 있다. 우주드는 베르베르 말로 곡식을 빻는다는 의미다. 근방에는 방앗간이 많을뿐더러 바위 위로 물이 끊임없이 세차게 떨어진다. 모든 전자 장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흙을 다져 지은 투박한 리야드 캐스케이드 드 우주드(Riad Cascades d'Ouzoud)의 소유주는 패트릭 라메리(Patrick Lamerie)이다. 라메리는 모로코에서 자란 건축가 겸 실내 장식가로 30여 년을 해외에서 활동한 후, 이곳을 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루프 테라스에서는 내려다보는 골짜기는 장관을 이룬다. 아홉 개 침실은 단순하고 우아한 공간으로 색색의 벽, 밝은 실로 짠 담요, 벽난로 그리고 트레킹으로 지친 허리의 회복을 도와줄 놀랍도록 편안한 골풀 의자가 갖춰져 있다. 모험을 좋아한다면 근방에서 급류 래프팅, 산악자전거, 노새 타기 등을 즐길 수 있다. 일상을 잠식한 기술에서 벗어나 집중적인 휴식을 취하고 싶다면 종이책을 가지고 테라스로 나가되, 해가 지기 시작하면 덮어두는 것을 추천한다.

 

 

 
건축

노년층을 위한 쾌적하고 혁신적인 안식처

리스본의 알카비데시 사회적 복합단지(Alcabideche Social Complex)는 노년층을 위한 주거공간을 제공하면서도 양로원이란 단어에 함축된 모든 부정적인 의미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어둑어둑하지도 않고, 비좁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다. 게레스 크루즈 아키텍토스(Guedes Cruz Arquitectos)의 참신한 디자인 덕분에 건축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적 삶과 사생활의 조화”가 실현되었다. 2012년에 지어진 복합단지에는 부부를 위한 52개의 공간과 간호진이 있는 지원 건물, 교류를 위한 공간이 있다. 독립건물로 지은 아파트를 메디나같이 배치해 건물과 건물을 폭이 서로 다른 다리로 이어 해가 좋은 날이면 산책하고 싶어지도록 구성했다. 입주자는 집안에서 스위치 하나로 응급 상황을 알릴 수 있고, 스위치를 누르면 평소엔 하얀 지붕이 붉은색으로 바뀐다. 밤에는 투명한 벽을 통해 외부 공동 구역으로 빛이 번진다. 정교한 관개 시스템으로 빗물을 모아 정원과 잔디를 푸르게 유지하기도 한다.

 

 

 
청취

뉴욕의 구절, 남부의 느긋한 노래, 그리고 두 개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

더파리스리뷰 팟캐스트(The Paris Review Podcast)의 10번째 이야기는 데이비드 세다리스가 변덕스러운 뮤즈에 대한 음흉한 고찰인 프랑크 오하라(Frank O’Hara)의 ‘파이어 아일랜드에서 태양과 나눈 대화 그대로의 이야기(A True Account of Talking to the Sun at Fire Island)’를 낭독하며 시작한다. “’하던 대로 해, 나처럼, 신경 쓰지 말고’ 태양이 시인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날씨에 대해 항상 불평해. 너무 덥다고 너무 춥다고, 너무 밝다고 너무 어둡다고, 해가 너무 짧다고 너무 길다고. 아예 모습도 보이지 않는 날이면 게으르다고 혹은 죽었다고 생각하지…이제 다시 자도록 해, 프랑크, 그럼 네 머릿속에 이별의 표시로 아주 작은 시를 두고 갈지도.’” 이어 저널의 남부 에디터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John Jeremiah Sullivan)이 로버트 존슨의 노래를 지하실에서 부르는 것 같은 울림으로 멋들어지게 뽑는다. 다음으로 연기자 다코타 존슨이 짝사랑에 대한 로베르토 볼라뇨 소설을 빌어 ‘가끔 그녀의 꿈을 꿔. 러브크래프트가 그린 멕시코에서 추워하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으로’하고 읊조린다. 마지막으로 배우 메리 루이즈 파커가 조이 윌리엄스의 단편 ‘메이킹 프렌즈(Making Friends)’를 낭독한다. 타인의 별장에 무단 침입해서 들키지 않는 한 최대한 오래 머물며 살아가는 떠돌이 리버티와 윌리에 대한 이야기다. 부유한 크래브 키(Crab Key)에서 덤으로 살아가는 와중에 둘은 영리하게도 섬의 보안 요원이자 요리를 좋아하고 인생에 대해 심오한 질문을 던지기 좋아하는 터닙시드와 친분을 쌓는다. 여자들이 원하는 건 뭘까, 그는 묻는다. ‘아무런 방해가 없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완성도 있는 팟캐스트의 진행 중간에 던져진 이 질문은 꽤 인상적인 질문에 대한 질문(metaquestion)이다.

 

 

제프리 청(Jeffrey Cheung)의 일러스트레이션

‘Everything has its cunningly devised implements, its preestablished apparatus…’

Thomas Carlyle